역사속의선조




서상한(徐相漢)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7-07 17:28:10       조회수 : 1105 파일 :

​서상한(徐相漢)

1901~1967년 재일항일민족운동가, 대구출신

한국민주당(韓國民主黨) 초대 총무를 지낸 서상일(徐相日)의 동생이다.

1914년 대구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재학중,

1918년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대학 전문부 경제과를 거쳐 세이소쿠영어학교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고향에서 학비가 오지 않아 신문배달, 직공, 인삼장사 등을 하면서 고학하였다.

일본의 동화정책에 적극 반대하여 [만약, 대사를 일으킨다면 내 목숨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하고는 하였다. 영친왕 이은(李垠)과 일본황족 방자(方子)와의 가례일이 1920429일로 발표되자 이를 저지하기로 결심하고 계획을 추진하였다.

그는 우편배달부로 가장하여 이은의 가례행열에 투탄하고 이어 일본 내무성과 외무성을 폭파하고, 사이토 조선총독과 이완용을 폭살할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를 추진하기 위하여 일본인 학생 이마카와, 우에무라 등과 폭탄을 제조, 동경 오지에서 폭탄의 성능을 시험하였다. 거사 준비 중 일본경찰의 주오대학 학생인 신모(申某)의 밀고로 그해 411일에 붙잡혀 그의 계획은 거사일을 목전에 두고 좌절되었다.

19207월 동경지방재판소에서 징역 4년형을 언도받고, 공소하여 922일 동경공소원에서 금고 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출옥 후 재일조선인의 노동운동에 진력하는 한편, 무정부주의 단체인 흑우회(黑友會) 및 동흥조선노동동맹(東興朝鮮勞動同盟)과 제휴하여 1936년 자택을 동흥조선노동동맹 사무실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광복될 때까지 일본에 거주하면서 일본경찰에 잡혀, 투옥된 독립운동가를 뒷바라지하는 등 항일민족운동을 다양하게 전개하였다. 그가 죽자 재일교포사회에서는 사회장에 준하는 단체장의 예로써 장례식을 거행하였다.

그 뒤 1975년 유해를 한국으로 옮겨 국립묘지에 안장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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