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선조




서상리(徐祥履)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7-07 17:25:00       조회수 : 1034 파일 :

서상리(徐祥履)

1602(선조35)~1659(효종10),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여길(汝吉), 종친부전첨 서경수(徐景需)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김희(金僖)의 딸이다.

인조 때 유생전강에서 장원하여 희릉참봉에 제수되었다가,

1630(인조8)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에 분관되었다가 여러 조()의 낭관(郎官)을 거쳐 시강원에 보직되고,

1635년 정언이 되었다.

1636년 병자로란 때는 봉림대군(鳳林大君)을 따라 남한산성에 들어갔다. 호란 뒤 원종(元宗인조의 아버지)의 부묘를 적극 주장하여 인조의 총애를 받았다. 그뒤 지평, 장령, 사간을 거쳐 경성판관에 특배되었고, 교리, 수찬, 등의 청요직(淸要職)에 올랐다.

1644년 청나라에 볼모로 갔던 소현세자(昭顯世子)가 일시 귀국하였다가 심양(瀋陽)으로 다시 돌아갈 때 세자의 보덕(輔德)으로 임명되어 수행하여 세자와 함께 돌아왔다.

이듬해 청나라에서 돌아온 소현세자가 갑자기 사망하여 사대부의 상례로 장례절차가 결정되자 앞장서서 예경(禮經)에 따라 세자의 예로 장사할 것을 주장하여 실행하게 하였다.

그 뒤 부교리, 사간 등을 거쳐

1646년 별시 문과의 참시관이 되었다가 시권 가운데 옛날 사건을 인용하여 지금의 재상자을 기만한 사건이 일어나 파직되었다가 곧 외직인 경성 남원 등의 지방관을 역임하였다.

효종이 즉위하자 다시 내직으로 돌아와 필선을 거쳐 동부승지로 있다가,

1652(효종3) 경주목사를 지내고 다시 돌아와 예조 참의, 동부승지, 병조참의에 승서되었다.

1655년 종성부사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으며, 이듬해 승지가 제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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